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리스인 조르바 (문단 편집) == 조르바의 기행과 사상 == 카잔차키스는 자신에게 영향을 준 인물들로 [[호메로스]], [[프리드리히 니체]] 그리고 [[앙리 베르그송]][* 직접 강의를 들었다.]을 들었다. 그가 출생했을 당시 크레타는 [[튀르키예]]([[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고, 어린 시절에 그는 아버지인 미할리스와 함께 이라클리오 시내 한복판에서 튀르키예에 저항하다 공개 처형된 그리스인들의 시체를 목격한다.[* 참고로 어린 카잔차키스는 시체의 발에 키스를 하며 아버지에게 무엇이 이들을 죽게 만들었냐고 물었다. 이에 대한 아버지의 대답은 바로 '''자유'''.] 이후로 그의 인생에서 최초의 투쟁은 그의 조국 크레타를 튀르키예의 지배로부터 독립시키는 투쟁이 되었다. 두번째 투쟁은 내부의 무지, 악의, 공포 같은 모든 형이상학적 추상으로부터의 해방을 쟁취하는 것이었으며, 끝으로 세번째 투쟁은 사람들이 섬기는 모든 우상들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만끽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 세가지의 투쟁은 결국 '''자유와 해방'''으로 귀결된다. 육체적 해방, 감정적 해방 그리고 정신적 해방이 그것이다. 젊은 시절 카잔차키스는 [[수도자]]들이 은둔하는 아토스 산(山)에 올랐다 거기서 고행하는 수도자들을 보고 믿음에 대해 환멸을 느끼는 경험을 했으며 [[발칸전쟁]] 당시 참전해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종군한 경험도 있다. 결국 조르바의 인생 경험은 어느 정도 카잔차키스의 그것과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위버멘쉬(超人)는 낙타처럼 기존 가치들에 대해 무조건 '예'를 하며 복종하고 따르지도, 사자처럼 '아니오'를 으르렁거리며 어떤 주인도 거부하는 자유로운 영혼도 아니다. 그저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하느님이 있거나 말거나 무한히 반복되는 단순한 놀이에서도 기쁨을 느끼며 삶을 즐기는 존재라고 보았다. 그리고 조르바는 하루 하루를 즉흥적으로 사고하며 행동한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고. 이러한 대목은 카잔차키스의 사상이 니체의 영향을 매우 짙게 받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소설의 막바지에 갈탄 광산이 망하고 '나'가 상심해 있을 때 조르바는 '나'에게 음식과 술을 권하고 '나'는 그에게 춤을 가르쳐달라는 제안을 하고는 둘이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 이 클라이막스에서 '나'는 조르바의 자유 의지를 받아들이는 뉘앙스를 취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